나의 본가는 어느 한 시골인데 주위는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해가 일찍 저무는 곳이다. 부모님은 우리가 취업을 한 이후 함께 하던 생활을 정리하시고 어린 시절을 보냈던 시골에 완전한 자리를 잡으셨다.
어느 날 한겨울, 더욱이 해가 일찍 저물고 차가운 바람이 부는 날이었다고 했다. 엄마랑 아빠도 일찍 잠에 들었는데 밤중에 누가 문을 쾅쾅쾅 두드리더란다. 엄마는 처음에 바람이 세게 불어서 문이 흔들리는 소린가 했지만 계속 쾅쾅쾅 두드리고 사람 소리가 들렸다고 했다. 순간 무서워서 나가지 못하고 아빠를 깨우셨다고 했다. 아빠는 현관에서 조용히 누구시냐고 물어봤더니 산골짜기 절에 들린 스님이라고 몸이 안 좋다면서 문을 열어달라고 하셨단다. 산골짜기에 절이 있는 건 마을사람들도 알고 예전에 어렸을 적 절이 지어지고 있을 때 나도 가본 적은 있었다. 그래도 한밤중이면 의심스럽고 무섭지 않은가?? 근데 아빠는 조심히 문을 열었드렸다고 했다. 나는 그 말에 아빠 큰일 나게 무슨 짓이냐고, 제정신이냐고 소리를 쳤다.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아빠가 아무리 여기 오랫동안 살고 고향이더라도 요즘 시골에도 흉흉한 일이 많은데! 라며 떠들어 댔다. 근데 아빠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스님이 아닐 수도 있고, 거짓말을 하는 나쁜 사람일 수도 있고, 한밤중에 문 좀 열어달라고 하는 그 사람의 말에 무엇을 느끼셨던 걸까? 무섭진 않았나? 아빠는 의심이 되지 않았다고 했다.
문을 열자마자 스님은 우리 집 거실로 들어와 이불을 달라고 하셨고, 아빠가 이불을 드리자 온몸을 감싸고 덜덜 떠셨다고 했다. 스님은 몸이 너무 안 좋은데 차도 망가지고 도저히 산속으로 갈 수가 없었다고 하룻밤만 신세 지고 가겠다고 하셨단다. 아빠는 알겠다고 하고 자리를 봐드렸고 엄마는 방에서 나가지 못하셨다고 했다. 그렇게 밤이 지나가고 새벽에 엄마는 아빠얘기를 듣고 아침을 드실 수 있게 따뜻한 밥과 포삭한 감자를 넣은 뜨끈한 북엇국을 끓이고 김치와 시골반찬 몇 가지를 차려드렸더니 한 그릇을 깨끗이 비우셨다고 했다.
스님은 본인은 병이 깊어 치료 중이시라고 했고, 추운 밤 따뜻한 집과 밥을 준비해 준 엄마아빠께 고마움의 마음으로 직접 담그신 고추장아찌 한 병을 선물로 주셨다고 했다. 그리고 아빠는 며칠 뒤 사람들과 어시장에 가서 장을 봐올 예정인데 그때 오셔서 같이 드실 수 있으면 드시자고 했고 스님은 며칠뒤 오셔서 다 같이 식사를 하셨다고 했다.
그때 스님은 전보다 너무 야위어 보였고 몸이 안 좋아 보이셨다고 했는데 그 이후 스님을 한 번도 못 뵈었다고 했다. 이 이야기는 엄마가 시간이 오래 지나고 해준 이야기인데 아마 암이셨던 게 아닌가 싶다고 하셨다. 치료를 위해 입원을 하셨거나 돌아가셨을까 싶다며..
그날밤에 아빠가 문을 열어드리지 않았더라면 어쩌셨을까? 차가운 겨울, 지친 심신과 어디 한 군데 의지할 곳도 없는 마을에서...
우리 엄마아빠의 그 따뜻함이 외롭고 아픈 스님께 힘이 되셨을까, 아무런 의심 없이 문을 열어줬던 아빠랑 새벽 일찍 아침을 준비해 드린 엄마의 정성이 아픈 스님에게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스님에게 따뜻한 봄이 찾아왔기를 바란다.